자폐인이 스스로 자폐를 규정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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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댓글 0건 조회 1,592회 작성일 21-12-27 11:10본문
엄마, 내 삶은 제법 괜찮은 거 같아
연말이다. 나름 일년을 정산해 본다. 이 자체가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우리 가족의 호주 생활이 안정기에 접어 들었다는 증거이고, 아들이 학업?또래 관계?감정 조절?운동 등 여러 면에서 안정적인 궤도 안에 들어서자 생긴 여유이기도 하다.
받아 든 성적표가 꽤 흡족하다. 벤은 학업면에서도 본인의 뇌가 애초에 갖고 태어난 잠재력을 잘 발휘했고, 친구 관계도 자신감이 생기고, 테니스와 농구 등 스포츠 클럽 활동에서의 기량 상승은 또 다시 벤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상승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누린 한 해였다.
소년들의 세계에서 운동 잘하고(자폐인이 여기까지 이르는 길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공부 좀 하면 이미 반은 접고 들어가는 게임이어서 벤의 자폐적인 독특함은 자연스럽게 개인의 취향 쯤으로 묻히는 효과가 있는 듯 하다.
두말하면 잔소리, 올해 가장 잘 한 일은 벤에게 자폐인이란 사실을 공개한 일, 자폐를 정체성과 우리 가족의 문화로 자리매김한 일,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벤이 자폐인이란 사실을 자부심의 언어로 규정해 준 일이다.
"Hannah Gadsby, Kristy Forbes, Jac den Houting, Summer Farrelly, I CAN network"(호주 자폐 청년 당사자들이 운영하는 후배 자폐인들을 위한 멘토링 기관) 프로그램의 자폐 당사자인 선배 멘토 등 일년간 벤을 성장시킨 중심에는 호주의 강력한 자폐 당사자이자 옹호자이자 활동가들인 선배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 아들을 키운 셈이다.
그들의 강연을 유투브로 함께 보고, 그들의 글을 함께 읽고, 비슷한 취미를 가진 자폐인 또래들과 자폐인 멘토들 사이에서 안전하게 취미 생활(마인크래프트)를 즐기며 벤은 본인이 속한 부족의 언어와 문화를 장착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다.
내가 주로 한 일은 자폐를 주로 비자폐인들이 규정하는 부정적인 의료적 관점이 아니라, 자폐 당사자들 중심의 언어로 규정하고, 또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같은 부족을 환대하고, 자부심의 언어로 프레임을 전환하는 선배 자폐인들의 언어에 벤을 노출 시켰을 뿐이다. 글쎄, 누군가 나에게 자폐아동에게 가장 좋은 치료가 뭐냐고 묻는다면, 일초도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답을 할 것이다.
“멋진 자폐 부족들과 연결해 주세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부지불식간에 벤은 스스로를 옹호하는 강력한 아이로 내 앞에 서 있었다. 언제나 아들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한 걸음 앞서 자라고 그래서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몇 달 전, 이사를 하면서 집 근처의 치과로 옮겼다. 첫 방문하는 날, 치과에 입장하기 전에 벤에게 물었다. 본인이 자폐인이란 사실을 치과의사에게 공개해도 되는지, 공개를 하면 어떤 장점이 있는지, 그리고 살아가면서 어떤 상황과 사람 앞에서 자폐인이란 사실을 공개하면 좋은지 등을 이야기 하면서 조심스럽게 의향을 살폈다.
어찌 보면 아들이 자폐인이란 사실을 알게 된 후에 모든 결정이 쉬워졌다. 상황을 얘기해 주고,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설명해 주고, 아들의 판단을 기다리고 가급적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결정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고민들과 언쟁들의 빈도가 꽤나 줄어들었다.
“Why not?”
아들은 선뜻 동의했다. 아직까지 아들은 자폐인으로 사는 일이 좀 불편한 점은 있어도 옳고 그름이나 부정적인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가 보다. 미소가 삽시간에 번졌다.
나에게 “자폐”란 단어가 마치 해리포터 속의 볼드모트처럼 절대로 입에 담으면 안되는 금기 용어라도 되는 양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자폐 진단을 받아 놓고도 아들에게 들킬 까봐 전전긍긍하던 풋내 나던 초짜 자폐 아동의 엄마였던 과거가 떠오른다. 이제는 그 고달팠던 시간들에 위로를 보내며 웃음과 함께 놓아주기로 했다. “네가 엄마보다 낫다, 자랑스런 아들.” 결국 참지 못하고 아들에게 칭찬을 쏟아 부었다.
“Ben is proudly Autistic (벤은 자랑스런 자폐인이에요).”
처음 만난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치과 의사와 인사를 나누며 공개를 했다. 이 짧은 문장 안에는 내가 말하고 싶은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고, 따라서 이 문장 하나만 던져보면 상대의 뉴로 다이버전트들에 대한 이해와 인식과 존중, 그리고 그를 넘어선 의료진의 전문성 까지도 단박에 드러난다.
우리 모자는 자폐를 더 이상 수치심과 부끄러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 자폐를 정체성과 문화로 재규정했다는 점, 벤에게 맞는 개별화된 환경과 의료를 제공하라는 요청, 더 나아가서는 엄마인 내가 아닌 자폐 당사자인 벤과 직접 대화를 하라는 뜻이다.
나의 한마디를 듣자마자 치과 의사는 바로 벤을 바라보며 대화의 물꼬를 열었다.
“알려줘서 고마워. 어떻게 환경을 조정해 줄까?”
“저는 감각이 예민해요. 우선 시끄러운 소리를 싫어해요. 귀에 소음 방지용 귀마개를 넣을 게요.”
“좋아. 또 다른 사항은 없어?”
“잇몸이 아주 예민하니까 클리닝 중에 휴식 시간을 자주 주세요.”
“알았어. 불편하면 언제든지 손을 들어.”
“저는 냄새에 예민해서 토하려고 할지도 몰라요.”
“알았어. 언제든지 손을 들어서 알려줘.”
“저는 무슨 일이 진행되는지 알아야 안심이 돼요.”
“좋아. 진료를 하면서 계속 설명을 해줄게.”
사람들은 개별화된 사람 중심의 지원과 서비스가 뭔가 대단히 특별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벤과 살아보면 사실 그렇지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떤 지원이 필요하세요?”
“자폐를 잘 몰라서 그러는데 필요한 점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단지 간단하고 솔직하게 묻는 일로 출발한다. “아이고, 힘들겠네요.”, “세상에나, 안됐네요.”, “빨리 좋아져야 할 텐데요.” 내가 누군가에게 벤이 자폐인임을 공개했을 때 이런 말들을 듣고 싶은 게 아니다. 안타깝고 동정 어린 말과 눈빛이 아니라, 치과 의사가 먼저 필요한 조정들을 물으며 벤의 건강권을 지켜주는 것처럼, 벤의 학교 교장이 해마다 반 편성시에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지원을 먼저 물어 교육권을 인정하는 것처럼, 친구 집에 잠마실을 보낼 때 아들이 자폐인이란 사실을 드러내면 친구 엄마가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챙기는 일처럼 직접 묻고 듣고 존중하면 된다.
자폐 아동과 살다 보면 비자폐 아동들처럼 즉각적이고 예상되는 반응을 하지 않아 ‘응답 받지 못하는 사랑’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평생 애정 표현을 받아 보지 못하면 어쩌지?’ 불안에 휩싸이고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가령 “더 이상 말하기 싫어.” 라며 간단한 질문에도 아들은 대답을 차단하기도 하고, 사랑한다는 나의 애정 공세에 귀찮다는 반응도 잦고, 학수고대하는 사랑한다는 말을 되돌려 주지도 않고, 심지어 몸에 손을 대는 것을 싫어하니 끌어안는 일도 어렵고 뽀뽀를 맘대로 해주지도 못한다.
어쩔 수 없이 벤이 어릴 때는 적잖이 상처를 받았다. 이제는 안다. 아들은 반응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 본인의 방식으로 이미 내가 쏟아 부은 애정과 사랑에 넘치는 응답과 사랑을 되돌려 주고 있다는 사실을.
밤이 하는 일을 사랑한다. 컴컴한 밤은 아들의 높은 불안과 스트레스로 잔뜩 높였던 방어벽을 허물어 말랑말랑한 상태로 만들기도 한다. 아들을 재우려고 함께 누우면 낮에는 엄마에게 속마음을 잘 안보이고, 스몰토크를 즐겨하지 않는 야박한 아들은 이 시간엔 수다쟁이로 변신하곤 한다.
그래서 간혹 이 시간엔 마치 오랫동안 밀렸던 선물들이 마구 쏟아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 마법의 순간에 벤이 무심하게 속삭이는 말들을 듣고 있으면, 이 사랑스런 영혼이 나의 아들이란 사실이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나온다.
“엄마, 내 삶은 제법 괜찮은 거 같아. 그리고 올해는 정말 좋은 한 해였어.”
http://www.ablenews.co.kr/News/NewsContent.aspx?CategoryCode=0006&NewsCode=000620211220131156143500
연말이다. 나름 일년을 정산해 본다. 이 자체가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우리 가족의 호주 생활이 안정기에 접어 들었다는 증거이고, 아들이 학업?또래 관계?감정 조절?운동 등 여러 면에서 안정적인 궤도 안에 들어서자 생긴 여유이기도 하다.
받아 든 성적표가 꽤 흡족하다. 벤은 학업면에서도 본인의 뇌가 애초에 갖고 태어난 잠재력을 잘 발휘했고, 친구 관계도 자신감이 생기고, 테니스와 농구 등 스포츠 클럽 활동에서의 기량 상승은 또 다시 벤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상승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누린 한 해였다.
소년들의 세계에서 운동 잘하고(자폐인이 여기까지 이르는 길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공부 좀 하면 이미 반은 접고 들어가는 게임이어서 벤의 자폐적인 독특함은 자연스럽게 개인의 취향 쯤으로 묻히는 효과가 있는 듯 하다.
두말하면 잔소리, 올해 가장 잘 한 일은 벤에게 자폐인이란 사실을 공개한 일, 자폐를 정체성과 우리 가족의 문화로 자리매김한 일,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벤이 자폐인이란 사실을 자부심의 언어로 규정해 준 일이다.
"Hannah Gadsby, Kristy Forbes, Jac den Houting, Summer Farrelly, I CAN network"(호주 자폐 청년 당사자들이 운영하는 후배 자폐인들을 위한 멘토링 기관) 프로그램의 자폐 당사자인 선배 멘토 등 일년간 벤을 성장시킨 중심에는 호주의 강력한 자폐 당사자이자 옹호자이자 활동가들인 선배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 아들을 키운 셈이다.
그들의 강연을 유투브로 함께 보고, 그들의 글을 함께 읽고, 비슷한 취미를 가진 자폐인 또래들과 자폐인 멘토들 사이에서 안전하게 취미 생활(마인크래프트)를 즐기며 벤은 본인이 속한 부족의 언어와 문화를 장착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다.
내가 주로 한 일은 자폐를 주로 비자폐인들이 규정하는 부정적인 의료적 관점이 아니라, 자폐 당사자들 중심의 언어로 규정하고, 또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같은 부족을 환대하고, 자부심의 언어로 프레임을 전환하는 선배 자폐인들의 언어에 벤을 노출 시켰을 뿐이다. 글쎄, 누군가 나에게 자폐아동에게 가장 좋은 치료가 뭐냐고 묻는다면, 일초도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답을 할 것이다.
“멋진 자폐 부족들과 연결해 주세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부지불식간에 벤은 스스로를 옹호하는 강력한 아이로 내 앞에 서 있었다. 언제나 아들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한 걸음 앞서 자라고 그래서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몇 달 전, 이사를 하면서 집 근처의 치과로 옮겼다. 첫 방문하는 날, 치과에 입장하기 전에 벤에게 물었다. 본인이 자폐인이란 사실을 치과의사에게 공개해도 되는지, 공개를 하면 어떤 장점이 있는지, 그리고 살아가면서 어떤 상황과 사람 앞에서 자폐인이란 사실을 공개하면 좋은지 등을 이야기 하면서 조심스럽게 의향을 살폈다.
어찌 보면 아들이 자폐인이란 사실을 알게 된 후에 모든 결정이 쉬워졌다. 상황을 얘기해 주고,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설명해 주고, 아들의 판단을 기다리고 가급적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결정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고민들과 언쟁들의 빈도가 꽤나 줄어들었다.
“Why not?”
아들은 선뜻 동의했다. 아직까지 아들은 자폐인으로 사는 일이 좀 불편한 점은 있어도 옳고 그름이나 부정적인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는 받아들이지 않는가 보다. 미소가 삽시간에 번졌다.
나에게 “자폐”란 단어가 마치 해리포터 속의 볼드모트처럼 절대로 입에 담으면 안되는 금기 용어라도 되는 양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자폐 진단을 받아 놓고도 아들에게 들킬 까봐 전전긍긍하던 풋내 나던 초짜 자폐 아동의 엄마였던 과거가 떠오른다. 이제는 그 고달팠던 시간들에 위로를 보내며 웃음과 함께 놓아주기로 했다. “네가 엄마보다 낫다, 자랑스런 아들.” 결국 참지 못하고 아들에게 칭찬을 쏟아 부었다.
“Ben is proudly Autistic (벤은 자랑스런 자폐인이에요).”
처음 만난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치과 의사와 인사를 나누며 공개를 했다. 이 짧은 문장 안에는 내가 말하고 싶은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고, 따라서 이 문장 하나만 던져보면 상대의 뉴로 다이버전트들에 대한 이해와 인식과 존중, 그리고 그를 넘어선 의료진의 전문성 까지도 단박에 드러난다.
우리 모자는 자폐를 더 이상 수치심과 부끄러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 자폐를 정체성과 문화로 재규정했다는 점, 벤에게 맞는 개별화된 환경과 의료를 제공하라는 요청, 더 나아가서는 엄마인 내가 아닌 자폐 당사자인 벤과 직접 대화를 하라는 뜻이다.
나의 한마디를 듣자마자 치과 의사는 바로 벤을 바라보며 대화의 물꼬를 열었다.
“알려줘서 고마워. 어떻게 환경을 조정해 줄까?”
“저는 감각이 예민해요. 우선 시끄러운 소리를 싫어해요. 귀에 소음 방지용 귀마개를 넣을 게요.”
“좋아. 또 다른 사항은 없어?”
“잇몸이 아주 예민하니까 클리닝 중에 휴식 시간을 자주 주세요.”
“알았어. 불편하면 언제든지 손을 들어.”
“저는 냄새에 예민해서 토하려고 할지도 몰라요.”
“알았어. 언제든지 손을 들어서 알려줘.”
“저는 무슨 일이 진행되는지 알아야 안심이 돼요.”
“좋아. 진료를 하면서 계속 설명을 해줄게.”
사람들은 개별화된 사람 중심의 지원과 서비스가 뭔가 대단히 특별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벤과 살아보면 사실 그렇지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어떤 지원이 필요하세요?”
“자폐를 잘 몰라서 그러는데 필요한 점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단지 간단하고 솔직하게 묻는 일로 출발한다. “아이고, 힘들겠네요.”, “세상에나, 안됐네요.”, “빨리 좋아져야 할 텐데요.” 내가 누군가에게 벤이 자폐인임을 공개했을 때 이런 말들을 듣고 싶은 게 아니다. 안타깝고 동정 어린 말과 눈빛이 아니라, 치과 의사가 먼저 필요한 조정들을 물으며 벤의 건강권을 지켜주는 것처럼, 벤의 학교 교장이 해마다 반 편성시에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지원을 먼저 물어 교육권을 인정하는 것처럼, 친구 집에 잠마실을 보낼 때 아들이 자폐인이란 사실을 드러내면 친구 엄마가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챙기는 일처럼 직접 묻고 듣고 존중하면 된다.
자폐 아동과 살다 보면 비자폐 아동들처럼 즉각적이고 예상되는 반응을 하지 않아 ‘응답 받지 못하는 사랑’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평생 애정 표현을 받아 보지 못하면 어쩌지?’ 불안에 휩싸이고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가령 “더 이상 말하기 싫어.” 라며 간단한 질문에도 아들은 대답을 차단하기도 하고, 사랑한다는 나의 애정 공세에 귀찮다는 반응도 잦고, 학수고대하는 사랑한다는 말을 되돌려 주지도 않고, 심지어 몸에 손을 대는 것을 싫어하니 끌어안는 일도 어렵고 뽀뽀를 맘대로 해주지도 못한다.
어쩔 수 없이 벤이 어릴 때는 적잖이 상처를 받았다. 이제는 안다. 아들은 반응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 본인의 방식으로 이미 내가 쏟아 부은 애정과 사랑에 넘치는 응답과 사랑을 되돌려 주고 있다는 사실을.
밤이 하는 일을 사랑한다. 컴컴한 밤은 아들의 높은 불안과 스트레스로 잔뜩 높였던 방어벽을 허물어 말랑말랑한 상태로 만들기도 한다. 아들을 재우려고 함께 누우면 낮에는 엄마에게 속마음을 잘 안보이고, 스몰토크를 즐겨하지 않는 야박한 아들은 이 시간엔 수다쟁이로 변신하곤 한다.
그래서 간혹 이 시간엔 마치 오랫동안 밀렸던 선물들이 마구 쏟아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 마법의 순간에 벤이 무심하게 속삭이는 말들을 듣고 있으면, 이 사랑스런 영혼이 나의 아들이란 사실이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나온다.
“엄마, 내 삶은 제법 괜찮은 거 같아. 그리고 올해는 정말 좋은 한 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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